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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마르티네스

last modified: 2015-02-23 14:36:59 Contributors


에버튼 FC 감독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몬톨리우
(Roberto Martínez Montoliú)
생년월일 1973년 7월 13일
국적 스페인
출신지 발라게르
신장 175cm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소속팀 레알 사라고사(1993~1994)
발라게르(1994~1995)
위건 애슬레틱(1995~2001)
마더웰(2001~2002)
월솔(2002~2003)
스완지 시티 AFC(2003~2006)
체스터 시티(2006~2007)
감독 스완지 시티 AFC(2007~2009)
위건 애슬레틱(2009~2013)
에버튼 FC(2013~ )

Roberto Martinez

축구감독. 2007년 스완지 시티 AFC에서 첫 지휘봉을 잡은 후, 2009년 위건 애슬레틱으로 이직해 2013년까지 감독직을 맡은 뒤 2013/14시즌부터 에버튼 FC의 감독을 맡게 되었다.

Contents

1. 어린 시절과 선수 시절의 마르티네즈
2. 감독 시절의 마르티네즈
2.1. 스완지 시티 AFC
2.2. 위건 애슬레틱
2.3. 에버튼 FC
3. 기타


1. 어린 시절과 선수 시절의 마르티네즈

스페인 발라게르에서 태어난 마르티네즈는 자신의 고향팀이자 당시 스페인 4부리그에 속해있던 CF 발라게르 [1] 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다. 9살 유스 경기를 뛰기 시작한 그는 모든 유스 아카데미를 거친 뒤, 16살이 되자 기대주라는 평가 아래 1991년 레알 사라고사로 이적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을 B팀이나 유스팀에서 보내던 그는 1992-93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어 약 40분을 뛴 것 외에는 별 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다음 시즌 4부리그에 있던 레알 사라고사 B팀 [2] 을 3부리그로 승격시키는데 공헌했지만, 해당 시즌이 끝난 후 고향팀인 발라게르로 돌아오게 된다. 한 시즌 동안 심적 부담감이 덜한 발라게르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유소년 축구교실을 운영하게 되는데 이는 훗날 자신의 감독으로서의 생활과 철학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3]

1995년, 당시 잉글랜드 4부리그 팀인 위건 구단주 데이브 웰란으로부터 오퍼를 받아 수락한 마르티네즈는 잉글랜드 무대에 데뷔하게 된다. 수비형 미드필더임에도 팀 내 득점왕에 오르며 팬들의 사랑을 받은 그는 여섯 시즌 동안 180경기에 출전했고 3부리그 승격과 풋볼 리그 트로피 [4] 우승에도 공헌한다. 그러나 2000년을 기점으로 하향세가 찾아오게 되는데 2001년 승격한 팀에서 '방출대상자'가 되어 계약이 해지된 마르티네즈는 코티시 프리미어리그의 마더웰로 이적하지만 8경기밖에 선발로 출전하지 못했고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팀이 파산 위기에 처하자 계약 해지를 당하게 된다.[5]

2002년에는 운 좋게 당시 잉글랜드 2부리그에 있던 월솔로 이적하지만 단 한 경기밖에 선발 출장하지 못하며 벤치워머 신세를 면치 못했다. [6] 결국 2002-2003 시즌 도중 단기계약으로 4부리그 팀인 스완지로 이적하고 여기선 좋은 활약을 하면서 주장자리까지 꿰차지만 새 감독 케니 잭켓이 온 후 주전 자리에서 밀리는 아픔을 겪는다. (...) 그래도 팀 선수층이 부족해지자 로테이션 멤버로 포함되며 팀을 3부리그 (리그 1) 승격시키는데 공헌했지만 다시 방출당하고, 2006-2007시즌 역시 4부리그 팀이었던 체스터 시티를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한다.

여러 팀에서 뛰었지만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고, 운까지 좋지 않던 마르티네즈. 그러나 세상만사는 모르는 법... 감독이 되자 큰 반전이 찾아오는데... 괜히 생존왕이 된게 아니야

2. 감독 시절의 마르티네즈

2.1. 스완지 시티 AFC

2007년 2월, 스완지 시티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데 다름아닌 감독으로서 복귀하게 된다. 그것도 자신을 방출시켰던 케니 잭켓의 후임으로! 굴러온 감독이 박힌 감독 빼낸다 감독 경력이 전혀 없었음에도 스완지 팬들은 그를 반겼는데 우선 팀에 대한 희망이 전무한 상태였고 (...), 마르티네즈는 선수 겸 감독이 불가능했기에 감독직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때문이다 (......) [7] 마르티네즈 본인은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으나, 체력적 한계로 인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감독직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이로서 3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파격적으로 감독에 데뷔한 그는 언론의 관심을 모은 만큼 파란을 일으키는 성적을 내는데 감독 데뷔 후 11경기에서 단 1패만을 기록하며 하위권에서 허덕이던 팀을 승격 플레이오프 근처까지 이끌며 시즌을 마쳤다.


다음 시즌인 2007-08 시즌에는 초반부터 무서운 기세를 일으키며 팀을 3부리그 (잉글리쉬 리그 1) 챔피언에 등극시키며 2부리그로 승격하는데 공헌한다. 스완지가 20여년만에 2부리그로 올라온 2008-09 시즌에는 리그 초반 31경기 단 5패만을 기록할 정도로 놀라운 상승세를 이끌었고, FA컵에서는 지난 대회 챔피언이자 당시 프리미어 리그 팀인 포츠머스를 2-0으로 제압하는 이변을 일으킨다. 그러나 시즌이 끝난 후, 소속팀 선수들이 야망이 아닌 돈때문에 더 큰 클럽들로 이적하는 걸 비판한 그는 팀에 대한 애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인터뷰에서는 "몰아내지 않는 한 팀에 잔류하겠다" 고 이야기했으나, 스완지에서는 감독을 구하던 스코틀랜드의 강호 셀틱과 프리미어리그 팀 위건의 오퍼를 받아들였고 결국 마르티네즈는 이전 구단주와 인연이 있던 위건으로 이직하게 된다. 이때 웰란 구단주는 1.5m 유로의 이적료에 3년 계약을 제시했고 "재임 기간동안 팀이 강등당하더라도 해임하지 않겠다."고 이야기 할 정도로 엄청난 구애를 보냈다. 그러나 위건으로 이적하자 스완지 팬들은 그를 배신자라고 비난하며 분노했다. 이에 대해 마르티네즈는 사과의 뜻을 보이면서 "선수로서 커리어 하이라이트를 보냈고 프리미어리그 팀이 된 위건의 감독 제의를 거절하기엔 힘들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2.2. 위건 애슬레틱

2009-10시즌부터 위건의 감독이 된 마르티네즈는 데뷔전인 아스톤 빌라와의 원정 경기를 승리로 이끌며 기대를 받는다. 그러나 이 해의 위건은 정말 도깨비팀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는데 첼시, 리버풀, 아스날 등을 잡는 이변을 일으킨 반면 승격팀 울버햄튼에게 패했고, 3번의 대형 떡실신을 당했다. 맨유에게 5-0 패, 토트넘에게 1-9 패, 첼시에게 0-8 패. 이 중 토트넘전 패배는 프리미어리그 팀 최초로 한 팀이 9골을 기록한 경기로 위건 팬들에게는 뼈아프고 심장까지 아픈(?) 경기였다. 다행히 16위를 기록하며 강등은 면했지만 -42라는 최악의 골득실을 기록하고 말았다.

위건이 이렇게 안 좋은 성적을 거둘 수 밖에 없었던건 팀 내 재정이 안 좋았고 지원이 너무나 미약한 수준이기 때문이었다. 전통적으로 럭비 도시로 알려진 위건은 2부리그나 3부리그 팀보다도 적은 관중을 기록할 정도로 티켓 판매량이 적고 구단 예산 자체도 빈약하다. [8] 이때문에 매 시즌 초와 겹치는 이적시장에서 타 클럽들의 관심을 받는 팀내 주전 선수들을 이적시키는 건 불가항적인 일이었고 팀내 조직력이 무너지면서 부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티네즈는 반쪽 자리 스쿼드로 팀을 프리미어리그에 잔류시키는 모습을 보이며, 축구 팬들의 찬사를 받는다. 2011-12시즌 위건에서 그의 진가가 드러나는데 시즌 초 8연패를 기록하고 시즌 개막(2011년 8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위건은 단 4승에 그치며 강등이 유력한 것으로 보였다. 30라운드 당시 19위에 그친 위건은 강호들과의 맞대결을 앞두고 있어 최하위이던 울버햄튼보다도 강등 확률이 높게 점쳐지던 상태였는데...마르티네즈는 이때부터 믿을 수 없는 마술을 부리기 시작한다. 생존왕의 2011-12시즌

무려 리버풀 - 스토크 - 첼시 - 맨유 - 아스날로 이어지는 죽음의 5연전에서 첼시전을 제외한 나머지 팀들에게 승리를 거둬 승점 12점을 얻으며 순식간에 강등권을 탈출했다. 이후 풀럼전에서 패배하자 분노한 듯, 뉴캐슬 - 블랙번 - 울버햄튼 3연전을 모두 스윕하며 시즌을 15위로 마치는 위엄을 보인다. 이때 기적에 가까운 모습을 연출한 마르티네즈에게 국내 축구팬들은 베어 그릴스 에서 따온 생존왕이라는 칭호를 수식하게 된다.


2012-13 시즌에는 위건의 FA컵우승이끌며 위건의 첫 메이저 대회 트로피를 가져옴과 동시에 UEFA 유로파 리그 출전권까지 얻는데 성공한다. 다만, 팀내 부상자들과 재정 악화로 리그에서는 지난 시즌과 달리 계속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며 생존왕의 모습을 보일 수 없었고 결국 위건의 챔피언쉽으로의 강등은 막을 수 없었다.아무리 생존왕이라도 자원은 있어야되는데... 선수가 지렁이나 나뭇가지도 아니고... FA컵 우승 3일 후 아스날전에서 위건의 강등이 확정될때 마르티네즈 감독의 체념하는 표정은 아쉬움과 연민을 자아내는 대목.

한편 이때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이 맨유의 새 사령탑으로 취임하면서 2013/14시즌부터 감독자리가 공석이 될 상황이던 에버튼은 마르티네즈 감독을 차기 사령탑 후보로 낙점하고, 위건에게 오퍼를 넣게 된다. 위건은 당초 "보내지 않겠다" 고 이야기했으나, 곧 마르티네즈 감독의 선택에 맡기겠다고 입장을 바꿔 에버튼의 마르티네즈 감독에 대한 접근을 허락했고 마르티네즈 감독은 며칠 뒤 결정을 내리게 된다.

2.3. 에버튼 FC


2013년 6월 6일 (한국시간), 마르티네즈는 에버튼 감독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취임회견에서 켄라이트 구단주의 이야기에 따르면 에버튼은 차기 감독 후보로 3명을 정했었는데, 여기서 선임된게 마르티네즈. 마르티네즈 감독은 에버튼에서 성공적인 모습을 보인 모예스 감독에 이어 에버튼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겠다" 고 이야기했다. 현지 팬들의 반응은 선임 당시에는 찬반 논란이 있었으나, 마르티네즈 감독 선임 기자회견 후에는 호감으로 돌아서며 큰 지지를 보내는 상태.

그후, 꿀영입과 챔피언스리그에 도전을 할 수 있는 성적을 보여주며 순항중이다. 전술도 괜찮아서 에버튼팬들 입장에서는 전임인 모예스급으로 훌륭한 감독이라는 평을 받는다. 모예스는 맨유가서 망한게 함정 임대위주의 영입이지만, 위건에서 좋은활약을 보였던 맥카시의 완전 영입이나 콜먼의 포텐폭발 베인스의 재계약등이 시너지를 내게 했다.

하지만 14/15시즌 2015년 1월 12일 현재는 리그 12위에 머물며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3. 기타

아내는 마더웰 시절에 만난 베스 톰슨이라는 스코틀랜드 여자로, 딸 Luella도 낳았다.

오랜 영국 생활 덕에 영어가 매우 유창하다. 인터뷰 때만 대충 영어로 뭔말 할지 생각해놓고 말하는 선수들과는 매우 다르게 프리토킹이 자유자재로 가능하며, 외국 화자들에게서 두드러지는 부분인 억양도 크게 튀지 않는다. 리버풀과 첼시 감독을 지낸 라파엘 베니테즈 등 스페인어권 출신 인물들이 영어로 말할 때면 스페인어 억양이 매우 강하게 드러나는 것에 비하면 굉장히 안정적. 영국 BBC의 Match of the Day 진행자인 게리 리네커앨런 시어러가 진행한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조추첨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잉글랜드가 D조의 우루과이가 톱시드인 조에서 이탈리아[9]와 첫 경기를 치르는 경악스러운 대진표[10]를 보고 징징대는 리네커와 시어러 사이에서 "그래도 너네는 조별리그만 뚫으면 편하자나..." 하며 위로한다. 하기사 스페인은 유로 2008부터 이어진 황금세대의 사실상 마지막 국제대회라는 점에서 이번 대회에 거는 기대가 큰데 첫 경기부터 네덜란드를 만나고 16강 뚫어도 잘못하다간 브라질 만나게 생겼으니 그거 하나는 부러울 수도 있겠다(...) C조가 주로 양민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토너먼트만 올라가면 편해지는 잉글랜드가 조별예선이 빡세게 걸린 것을 대회 준비를 좀더 철저히 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고 위로하는 모습은 잉글랜드 팬들에겐 그저 안습. 그리고 양팀 모두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는 미담이 전해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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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13/14시즌 현재 스페인 4부리그에 속해있다. 사실 4부리그 붙박이
  • [2] 스페인 리그 특성상 B팀 (2군팀)도 하부 리그에 참여하는 케이스가 많은데, 1992-93시즌 당시 레알 사라고사 A팀은 1부리그 상위권이었지만, B팀은 3부리그에서 4부리그로 강등당한 상태였다.
  • [3] 매 주말마다 9살 어린이들이 축구하는걸 지도했는데, 전술이나 구체적인 플레이를 이해하기 힘든 어린 아이들이보다니 세세하게 가르치기보단 자신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게 유도했다고 한다. 본인의 자서진에서 마르티네즈는 "적어도 15살까지는 자신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플레이를 하게 해야 축구선수로서의 특별함을 가질 수 있다." 고 이야기했는데 이때의 경험은 프로감독으로서도 개개인의 특성을 살리는 전술을 구사하고 유스 시스템의 성장을 강조하는 현재의 마르티네즈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 유스 시스템의 기밀이었군
  • [4] 하부리그 팀들간의 컵 대회
  • [5] 그런데 이 기간에 스코틀랜드 출신의 여자를 꼬셔서 결혼까지 했다. 오오!
  • [6] 그나마 선발출전한 레딩 전에선 퇴장을 당하고 만다 (...)
  • [7] 체스터 소속이던 마르티네즈는 이적시장이 닫힌 2월 감독으로 선임되었기에 선수로서 뛰는건 불가능했다. 오로지 감독으로서만 활동 가능.
  • [8] 이때문에 에버튼과 같이 엮어서 보는 경우도 있는데, 에버튼은 이적예산이 적을 뿐 주급예산은 리그 7위를 기록할 정도로 구단 운영에는 큰 지장이 없다. 반면 위건은 2012-13시즌 당시 이적과 주급예산 모두 리그 최하위를 기록할 정도로 안 좋던 상황.
  • [9] 유로 2012 8강에서 이탈리아를 만난 잉글랜드는 120분간 영혼의 10백을 선보인 뒤 승부차기에서 패했다.
  • [10] 더구나 경기 장소도 아마존 유역의 습도 99%인 동네라서 잉글랜드는 베이스캠프인 리우데자네이루로부터의 이동거리가 장난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