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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렌스 세도르프

last modified: 2015-02-04 19:47:53 Contributors



네덜란드 국적의 전직 축구 선수이자 AC 밀란 역사상 첫 흑인 감독이 된 레전드. 그리고 재빠른 경질.


이름 클라렌서 세이도르프[1] (Clarence Clyde Seedorf)
생년월일 1976년 4월 1일
국적 네덜란드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2]
신체조건 176cm, 82kg
소속팀(선수) AFC 아약스(1992~1995)
UC 삼프도리아(1995~1996)[3]
레알 마드리드 CF(1996~1999)
FC 인테르나치오날레(1999~2002)
AC 밀란(2002~2012)
보타포구 FR(2012~2014)
소속팀(감독) AC 밀란 (2014)
국가대표 78경기 11골
개인수상 네덜란드 올해의 축구선수(1993~1994)
UEFA 올해의 팀(2002)
FIFA 100(2004)
2006/07 UEFA 챔피언스리그 최고의 미드필더
FIFA 클럽 월드컵 실버볼(2007)
UEFA 올해의 팀 (2007)
레알 마드리드 선정 세기의 팀(2008)
토레타 상 선정 유럽 최고의 스포츠 선수(2008)

2002 UEFA BEST 11
FW
호나우두
FW
티에리 앙리
MF
이미언 더프
MF
지네딘 지단
MF
미하엘 발락
MF
클라렌스 세도르프
DF
호베르투 카를로스
DF
리스티안 키부
DF
알레산드로 네스타
DF
카를레스 푸욜
GK
슈튀 레츠베르
2007 UEFA BEST 11
FW
디디에 드록바
FW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MF
클라렌스 세도르프
MF
카카
MF
스티븐 제라드
MF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DF
에릭 아비달
DF
존 테리
DF
알레산드로 네스타
DF
다니에우 아우베스
GK
이케르 카시야스

Contents

1. 플레이 스타일
2. 국가대표
3. 감독


1. 플레이 스타일

그야말로 하늘이 낳은 불세출의 천재,또 다른 별명은 20세기 최후의 천재. 위의 수상기록과 더불어 빅이어세 클럽에서 총 네 번[4] 들어올렸다는 사실이 모든것을 설명해준다. 현재 스페인 대표팀, FC 바르셀로나의 핵심 미드필더인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최종완성형이 바로 이 선수이다.[5] 1990년대 후반부터 00년대 중.후반까지 활약한 선수 가운데 파트리크 비에이라, 미하엘 발락, 질베르투 실바, 제 호베르투, 에메르손과 함께 전술이해도가 뛰어난 선수로 꼽힌다. 말 그대로 만능. 그리고 재능 뿐만 아니라 실적 면에서도 뛰어났다. 말 그대로 만능. 또한 비에이라나 실바가 자국 동료인 지네딘 지단이나 히바우두와 같은 걸출한 플레이메이커나 공격형 미드필더의 존재로 인해 전문 공미를 맡은 적은 특수한 상황이 아닌 경우를 제외하면 적었으나 세도르프와 발락 제 호베르투는 정말로 미드필더 전 포지션에 걸쳐서 골고루 뛰었다.

팀이 필요할때마다 보직을 변경할수 있어 팀의 윤활유같은 존재였으며, 사실상 AC 밀란의 막장화도 세간에 알려진것 처럼 안드레아 피를로의 노예화로 인한 부진 및 부상이 아닌 이 선수의 노쇠화가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6]

축구지능 및 센스가 매우 뛰어나 체력이 떨어진 말년에는 마티유 플라미니가 펄펄 뛰어다니지만 돌대가리인 것과 많이 대비됐었다. 체력이 노쇠한 11~12 시즌에는 산책흑형이라 불리며 장수에 도움되시라는 팬들의 정성이 아주 지극했는데 그렇게 걸어다니는 와중에도 축구실력만큼은 여전해서 산책흑형을 축복하고 그의 장수를 기원하던 팬들은 이따금 슬퍼지곤 했다. 특히 비슷한 맥락으로 붙여진 661형은 교체시켜 놓은 다음 끝나고 보니 활동량이 661m에 불과했다는 경악할 만한 사실에서 비롯된, 왠지 은유적이고 풍자적면서도 비의적이고 암호적인 뉘앙스에 심지어 악마의 숫자 666까지 연상시키는 그야말로 축구계에서 다시 나오기 힘든 불세출의 별명이라 할 만하다.

패싱, 슈팅, 드리블, 체력 어느 하나 빠지는게 없이 특출난 선수로 특히 레이저같은 중거리슛이 일품이다. 상기했다시피 축구지능은 역대급인지라 미드필더 전 포지션을 어정쩡하게가 아닌 완벽하게 소화할수 있었다. 전성기 당시 우리나라에는 유럽축구가 퍼지기 전이였고, 상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가 카카, 안드리 셰브첸코, 안드레아 피를로에게 쏠려있었기에 밀란 시절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아약스, 레알 마드리드 시절에는 화려한 플레이와 정신나간 슈팅력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렇게 완벽해 보이는 선수이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는데 기복이 매우 심하였다. 밀란 시절에는 그나마 나아졌지만, 레알마드리드 입단 1년후, 인테르 시절 극심한 슬럼프를 겪어 레알에서 핵심선수 취급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쫒겨나듯이 인테르로 이적했고 인테르에서는 전혀 실력발휘를 못하고 프란체스코 코코[7]와의 맞트레이드로 AC 밀란으로 이적하지만, 밀란에게는 신의 한수로 꼽히는 영입이였다. 밀란에는 당시 안드레아 피를로, 젠나로 가투소, 마시모 암브로시니, 르난도 레돈도, 세르징요, 마누엘 루이 코스타등이 버티고 있었는데 이중 세르징요는 날개 포지션, 루이코스타는 공미, 레돈도는 부상으로 골골대고 있었고, 암브로시니는 주전으로 쓰기엔 뭔가 미심쩍었는데 세도르프의 영입으로 3미들의 마지막 퍼즐을 완성하고 88~94년도의 밀란제너레이션의 영광을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재현하는데 이바지 하였다.

다만 육체적으로는 그렇게 뛰어나진 못했다. 루드 굴리트와의 가장 큰 차이점. 레알에서 약관의 나이에 10번을 달며 공격을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그렇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도 신체적으로는 최정상 레벨에서 특출나지 못했기 때문. 약간 내려간 위치에서 대성했다고 할 수 있다.[8]

2. 국가대표

가장 저평가되는 원인으로는 국가대항전에서는 유달리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데 있다. 1998 월드컵 당시만 해도 대한민국에게 요주의 선수로 꼽힌건 데니스 베르캄프, 크 오베르마스, 파트릭 클루이베르트였을 정도이다. 이후 유로 2000에서도 네임 밸류에 비해 큰 활약을 하지 못했으며, 2002 한일 월드컵네덜란드의 예선 탈락으로 참가하지도 못한다. 이후 유로 2004부터는 감독인 마르코 반 바스텐과 불화가 겹쳐 국대 동료인 마르크 반 봄멜과 국대를 은퇴하기에 이르게 된다.[9] 30대 이전에 국대 78경기의 기록을 보면 이 선수가 국대에서 얼마나 중요한 선수인지 알수 있겠지만 역시 클래스에 비해 대단한 활약을 해주진 못했다.[10]

3. 감독

이후에는 브라질 리그에서 뛰다가 2014년 1월 15일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동시에 AC 밀란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멀쩡히 현역으로 뛰다가 베를루스코니가 꼬셔서 감독직을 맡게 된것.

부임 후 성적은 현 밀란의 선수단 수준[11]에 비해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면서 아직은 지켜봐야 하지만 밀란에서 사라진 위닝 멘탈리티를 되찾고 알레그리시절 무전술에서 벗어났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아직 초짜 감독이다 보니 전술의 미숙함이 아직까지 눈에 띈다는 지적이 있다.[12] 초중반엔 좀 해맸으나 후반에 5연승을 하며 분위기가 괜찮았으나 UEFA 유로파 리그로 올리기엔 쉽지 않았고, 결국 아탈란타전에서 역전패하며 힘들어졌다. 그러던 와중 현역이던 자신을 갑자기 선임한 은 다른 감독을 찾고 있다. 밀란팬들은 괜히 레전드 데려와서 버리는거 아니냐고 분노하고 있다.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베레기에 의해 시즌 뒤 경질되고 필리포 인자기가 후임 감독으로 팀을 맡게 되었다.과대평과된 쩌리들이나 정리하지

다만 경질을 당한 후 밀란 선수들이 집단으로 그를 디스하는 것울 보면 성적은 준수했지만 선수들과의 관계에는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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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네덜란드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 보통 세도르프, 시도르프 등으로 불렸다.
  • [2] 실제로는 전 미드필더를 소화할수 있다.
  • [3] 세리에 7공주가 출범하기 약 1~2년 이전의 시대로 이때까지만 해도 리그 강호로 손꼽혔다. 맨시티의 감독이었던 로베르토 만치니가 당시 이팀의 주포이자 레전드.
  • [4] 아약스 94-95, 레알 마드리드 97-98, 밀란 02-03, 06-07. 위 시즌 모두 무임승차가 아닌 본인의 뛰어난 활약으로 팀의 챔스우승을 견인했다.
  • [5] 덧붙여 말하자면 플레이 스타일이 완성되기 전인 08-09 시즌 이전의 이야기로, 세도르프와 이니에스타의 롤은 확연하게 다르다.세간의 평가는 이니에스타가 더 높지만 전술적인 활용도 면에서는 이니에스타는 세도르프와 비교되는건 세도르프에게 실례.
  • [6] 젠나로 가투소가 중원을 틀어막는다 해도 대체자인 암브로시니등이 있으며, 안드레아 피를로가 빠지면 그 자리를 대신하는게 가능했지만, 세도르프가 빠지면, 피를로와 가투소 사이에서의 패싱 밑 공격전개 연결을 수행할 선수가 없어져 버려, 08-09 시즌 AC 밀란처럼 카카의 치달에 의존하는 상황만이 나올수 밖에 없었다. 카카 마저 이적해버린 09-10 시즌 밀란은 말 그대로 눈이 썩는 경기력이 무었인지 제대로 보여주었다. 이 당시 호나우지뉴, 파투, 세도르프, 세페 파발리, 파올로 말디니가 없었으면 강등권도 이상하지 않았을거란 말도 들을 정도이다. 이때 피를로, 가투소는 부상 및 부진으로 골골대어 제대로 활약을 못하였다.
  • [7] 대한민국vs이탈리아의 16강전 당시 왼쪽풀백으로 양파망을 쓴 그 선수다. 본래 말디니의 뒤를 이을 차세대 수비수이자 조각외모로 이탈리아 내에서는 탤런트 뺨치는 외모로 인기를 끌었으나, 너무 이른 나이에 성공을 한게 문제일까... 이후 방탕한 생활 및 자기관리 미숙으로 유리몸생활을 하다 이른나이에 은퇴하고 모델및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 [8] 사실 육체적 능력이 빼어나지 못한 선수가 그렇지 않은 선수보다 기복이 심한 경향이 있다. 예컨대 호날두.
  • [9] 봄멜은 은퇴 번복하긴 한다. 참고로 반 봄멜의 장인은 2010년 월드컵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을 맡은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이며, 유로 2012 때 네덜란드가 삽질하면서 반 마르베이크 감독이 경질되자 반 봄멜도 장인의 경질에 충격을 받아 다시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 [10] 프란체스코 토티,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또한 국대에서의 활약이 저조하여 욕을 많이 먹던 선수였다. 둘다 월드컵 우승하였으니 국대 커리어도 만족스럽고 둘의 활약으로 호주와 독일을 꺾었으니 이탈리아도 만족했을것이다.
  • [11] 명성과 이름값에 비해 제실력을 발휘하는 선수가 마리오 발로텔리, 카카뿐이다.(...)
  • [12] 4-2-3-1 전술이 선수들에게 녹아든다면 급속도로 무서워진단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지금 밀란에겐 미묘한 전술이라 팀에 전술을 맞추지 못 한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