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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대성

last modified: 2014-12-18 16:44:23 Contributors


베이징 궈안 No.16
하대성 (河大成 / Ha Dae-sung)
출생 1985년 3월 2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인천광역시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182cm, 73kg
소속팀 울산 현대(2004~2005)
대구 FC(2006~2008)
전북 현대 모터스(2009)
FC 서울(2010~2013)
베이징 궈안(2014~ )
국가대표 11경기

2011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동국
FW
데얀
MF
염기훈
MF
윤빛가람
MF
하대성
MF
에닝요
DF
박원재
DF
곽태휘
DF
조성환
DF
최철순
GK
김영광
201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동국
FW
데얀
MF
몰리나
MF
하대성
MF
황진성
MF
이근호
DF
아디
DF
정인환
DF
곽태휘
DF
김창수
GK
김용대
2013 K리그 클래식 베스트 일레븐
FW
김신욱
FW
데얀
MF
고무열
MF
이명주
MF
하대성
MF
레오나르도
DF
아디
DF
김치곤
DF
김원일
DF
이용
GK
김승규

Contents

1. 개요
2. 플레이 스타일
3. 기타

1. 개요

한국의 축구선수. 베이징 궈안 소속

부평고를 거쳐 2004년 울산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한다. 울산의 두터운 선수층에 밀려 1년 가량 출전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2006년 대구 FC로 이적하며 빛을 보게된다. 대구에서 꾸준히 출장 시간을 늘려가며 기량을 쌓았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함께해온 친구 이근호와 발을 맞춰 대구 특유의 공격축구를 이끌게 된다.[1] 이근호, 에닝요, 장남석, 루이지뉴 등 주축 공격수들이 상대진영으로 돌격했을 때 팀의 후방을 지키며 전방으로 볼을 배급하는 역할은 하대성의 몫이었다.[2] 기량을 인정받은 하대성은 2009년 광란의 영입을 선보인 전북으로 이적해[3] 30경기 2골 2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창단 첫 우승에 기여했다.

그리고 2010년. 2009시즌 최종 5위에 그친 이후 감독이하 스탭, 선수단 태반을 물갈이하며 절치부심하던 서울은 전북에 심우연, 김승용을 내주고 하대성, 이현승을 받아오는 2-2 트레이드를 단행한다.[4]

조직력을 강조한 빙가다 감독의 지도아래 팀에 녹아든 하대성은 중원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해내며 서울의 핵심 미드필더로 자리 잡았다. 아디, 김한윤 등 뛰어난 동료들의 지원아래 그간 자제해왔던 공격력까지 폭발시키며 33경기 8골 3도움. 개인 최다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다.

2011을 앞두고 많은 전문가와 팬들은 하대성을 서울의 키 플레이어로 꼽는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수원과의 개막전을 앞두고 햄스트링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하고 만다. 하대성에 이어 고명진, 한태유까지 부상으로 쓰러졌고 최현태, 문기한만으로는 그 공백을 메울수가 없었다. 결국 서울은 악재속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시준 중반 최용수 감독 대행 체제에서 복귀한 하대성은 잔부상에 시달리면서도 서울의 6강 진출에 지대한 공을 세우는데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서울의 3위를 확정지었던 30라운드 경남전은 그 백미였다.

화려한 스쿼드를 자랑하는 서울이지만 하대성을 대체할 만한 선수는 없다. 대표적인 경기가 울산과의 6강 플레이오프. 하대성이 빠진 상황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장한 고명진은 울산의 장신 수비수들의 철저한 마크에 고전했고 파트너 한태유는 수비에 전념하며 막힌 볼배급에 전혀 보탬에 되지 못했다. 결국 서울은 울산의 조직적인 수비축구를 뚫지 못하고 패배.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러한 역량을 인정받아 부상으로 전해에 비해 출장수가 적었음에도 2011시즌 K리그 베스트11 미드필더 부분에 당당히 선발되었다. 12시즌에는 팀의 주장을 맡아 데얀, 몰리나와 함께 우승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데몰리션과 에스쿠데로의 뒤에서 찔러주는 킬패스와 유기적인 오프 더 볼 무브가 일품이었다는 평. 무난하게 2년 연속 리그 베스트 11에도 선정되었다. 리더쉽과 실력을 높게 평가받아 2013시즌에도 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중국 슈퍼 리그 베이징 궈안으로 이적이 확정되었다.#

국대에서도 여러 차례 소집되었으나 잘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홍명보호에 들어와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며 드디어 연착륙에 성공할 것처럼 보여 팬들의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기성용이 사고 크게 치고 소속팀에서의 입지도 불안해진 틈에 이명주와 함께 대표팀 중원을 책임졌다. 대표팀이 빈공과 수비집중력 저하로 질타를 받을때도 하대성-이명주가 버틴 중원은 견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유럽파들이 본격적으로 소집되기 시작하자 귀신같이 라인업에서 빠졌다. 물의를 일으켜 가면서 기성용을 데려간 홍감독의 행보를 볼때 국대 레귤러는 여의치 않아 보인다. [5]


2014 브라질 월드컵에 생애 처음 발탁되었으나 부상으로 경기에 뛰지 못했다.

2. 플레이 스타일


왕성한 활동량과 뛰어난 볼간수 능력, 좋은 축구 아이큐를 자랑하는 전천후 미드필더로 공수 양면에서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팀의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팔색조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막강한 공격진을 보유했지만 수비력에 문제가 있었던 대구에서는 이근호 등을 후방에서 받치는 룰을 수행했고 아디김한윤이란 걸출한 파트너가 있는 서울에서는 훨씬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다 아디의 광대뼈 부상과 제파로프의 임대 이적 이후에는 다시 수비적인 롤을 수행했다.

팀 내에선 스페인의 사비에 빗대 하비라는 별명으로 불리는데, 띄엄띄엄 서울 경기를 보는 타팀 팬들에겐 의외로 평가가 짠 경우가 있다.그리고 국대나 epl 찔끔 보는 사람들에게는 기성용 때문에 몹시 평가가 짜다. 눈에 팍 띄일 만한 플레이를 주로 하는 선수는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서울 팬들은 하대성이 빠졌을 때 팀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볼 수 있기 때문에 하대성을 좋아한다. 유기적인 연계 플레이와 오프 더 볼 무브, 공수에 걸친 뛰어난 조율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순간적으로 경기 분위기를 반전시키거나 경기의 맥을 짚고, 전체 플레이의 틀을 짜내는 플레이가 가능하다. 패스, 드리블 돌파, 볼 간수, 태클, 반칙 등 공수 양면에 걸쳐서 말이다. 높은 지역으로 올라오는 일이 적으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적게 받으며 받아봤자 k리거ㅡㅡ 하는 시선 때문에 눈에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다만 기성용과 비교하자면 아무래도 신체적 건장함은 떨어지는 게 사실이고 안정성이 부족해서 어이없는 실수도 이따금 저지르곤 한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으로 승부에 영향을 끼치려 시도하고자 하는 성향은 분명 기성용보다 강하다.

3. 기타


6월 포포투 이근호 인터뷰[6]

Q. 위문편지는 많이 오나요?

A. 중략....

어느날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으로 시작되는 주소에 '권유리'라는 이름이 적힌 정말 예쁜 편지봉투가 들어왔어요. 아는 이름이 아니어서 팬인가 싶었죠. 봉투를 열어 편지를 봤더니 첫 문장이 '오빠 혼자 봐야 돼'인 거예요. 괜히 설레잖아요.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하는데. 읽다 보니 이거 하대성이 장난친 거더라구요. 어우. 전화해서 한바탕 욕을 해줬죠. 알고 보니 입대 동기 백종환한데도 '송혜교'라는 이름으로 보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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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시절 이근호, 샤다라빠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샤다라빠가 김현회와 함께 당시 막 주목받기 시작한 이근호를 인터뷰한적이 있었는데 이근호가 가장 잘맞고 절친한 선수로 하대성을 거론하자 샤다라빠가 '그럼 언젠가 같이 뛰고 싶으시겠어요?'라는 어이없는 멘트를 날렸다. 순간 할말의 잃은 이근호의 표정과 강하게 째려보는 김현회의 표정이 일품.
  • [2] 이들의 활약덕에 대구는 2008시즌 팀 득점 공동1위에 오른다. 다만 팀 실점도 1위. 이는 변병주 당시 감독의 극단적인 전술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 [3] 이 과정에서 이적료 분쟁이 발생했지만 원만하게 해결되었다.
  • [4] 심우연과 김승용이 당시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나 있던터라 트레이드의 밸런스에 대해 갑론을박이 많았다. 2013시즌 종료 시점에서 하대성은 서울의 주장이자 K리그 최고 수준의 중앙 미드필더로 자리잡았으나 이현승은 서울에서 제대로 뛰어 보지도 못하고 전남으로 이적하고 나서야 포텐이 약간은 터졌다. 장신 공격수 심우연은 전북에서 큰 키를 눈여겨본 최강희 감독에 의해 센터백으로 변신해 11시즌부터 주전 수비수로 발돋음해 리그 최고의 활약을 보이다 팀이 정인환을 영입하자 주전자리에 위협을 느껴 13시즌 성남으로 이적했다(이적료가 20억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교한 크로스가 장기인 클래식 윙어 김승용은 전북에선 벤치만 지키며 큰 역할을 하진 못했지만 J리그 감바 오사카로 이적하면서 이적료로 9억이라는 꽁돈을 남겨주고 떠났다. 결국 양팀다 한 명을 키플레이어급으로 써먹었고 한 명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버렸다는 점에서 대강 비등비등한 트레이드로 평가된다.
  • [5] 현 시점에서 월드컵 베스트일레븐에는 포함되기 힘드나, 기성용의 백업역할을 두고 이명주와 경쟁하는 형국이다.
  • [6] 이근호는 12시즌 종료후 상무 입대. 하대성은 어린 시절 앓았던 질병탓에 군면제다.